보통 한번 멀어진 인연은
굳이 다시 붙잡으려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이 꽤나 가혹하고
또 사회를 너무 차갑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아 근데 그것도 Case by Case였구나…
아니 사실 더 정확히는 그냥 검증된 이론에 가까운 수준이다.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은
내가 붙잡지 않으면 자연스레 멀어진다.
그 사람은 원래부터 내가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까
아니 사실 뭐 잡는 기색은 보이긴 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그 이후로 완전 단절되다시피 했었으니까
그동안 나는 왜 굳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알고있다.
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실제 모습이 어떻든지 지지하고 좋아해준다.
그사람의 단점을 보게 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일부로 보고
그 단점으로 전체를 흐리거나, 함부러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하지 못할때조차
남들은 그런 식으로 이해해보려는 태도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친하게 느낄 수록 더 당연하게 생각하고
타인이 느끼기엔 함부러 대한 적도 있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누구나 나쁜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 안에서 그들을 우상화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나쁜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심리학을 배우기 전부터 기본적으로 나는 그랬다
인본주의적이고, 지금은 백지설을 믿지만 성선설을 믿었고
내가 세상은 선하다는 편견에 갇혀서 세상을 꽤 밝게 봤지만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믿는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의 내면에
그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한 원인에는 내가 있지 않다는걸
나는… 아니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알 수 없기에 내 탓이라는 이유를 가져다 붙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것과, 나쁜 사람이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생각은
전혀 틀리지 않았었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그들의 어떠한 목적을 위해 때때로 나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몰랐고, 그만큼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어릴적 아버지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한 것이
나와 함께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일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는걸 알면서도
그것을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적용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은… 아버지께서 원하는 다른 것들을 하실 시간은 있었지만 내게 시간을 내주지 못했다는 것도 알았기에
어쩌면 아버지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하다.)
우리는 이미 대부분의 사건에 대해 올바른 답을 추론해낼 능력은 있지만
대부분 잘 생각해보지 않는데
이러한 철학적, 탐구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와 타인에게 해를 끼치게 만드는 것 같다.
때론 누군가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과하기를 꺼리기도 한다.
그래도 정말 미안하다면 용서받지 못하더라도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
사과란 것은 무엇일까?
애초에 나에겐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
상대방에겐 잘못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가 각박해진 것인지
서회의 기준에서 내가 너그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종종 나한테 사과하고는 하는데
그게 왜 사과할 일이냐는 말이
내가 늘 한결같이 하게 되는 말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내가 맞다.
심리학에서 공격성은 “행위자의 의도”로 구분한다고 한다.
나는 이에는 동의하지만
내가 이전에 내린 결론으로는
1. 의도는 나쁨, 결과는 좋음 = 좋은 것
2. 의도는 나쁨, 결과도 나쁨 = 안타까운 것
3. 의도는 좋음, 결과가 나쁨 = 아쉬운 것
4. 의도는 좋음, 결과도 좋음 = 좋은 것
나는 어쩌면 나쁘다는 평가를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나는 싫어하는 것도 많고
때때로 분노하고,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를 혐오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해야될 때, 말해야 할 때 라는 생각이 들면
누군가가 기분 나쁘거나, 상처를 받게 된다 할 지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이다.
윤리적 측면에서 방관하는 것을 착하다고 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가 작용하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나는 객관적으로 정의로운 편은 아닐 것이다.
내 주관에서 내가 세운 도덕적 기준 아래에서 정의로운 것이지..
타인들도 그럴 것이다.
나쁘다의 범주가 엄격할 수록
누군가의 별거 아닌 행동도 문제거리로 보이고
블랙컨슈머나 진상도 그런 이유로 생기는 것이라는 점은 안다.
(물론 인지적 오류와 모순 등의 문제는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처럼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와중에도 계속된다.
원인은 호기심과 논리, 납득 뭐 다양하겠지만
이것을 어떻게 정리할지는 모르겠다
나의 자아도식을 안정적으로 쌓으려는 선천적인 특성일 수도 있을 것이고
실수하지 않기 위한 완벽주의나
착한아이 증후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 근데 이걸 모르는 것도 문제는 아니더라.
지금까지 나온 모든 심리학 이론 중
완벽하게 정답이라고 인정받는 이론은 없다.
모두 조금씩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지금도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가고 있으니까…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이 훨씬 발전해서
인간 내면에 대해 밝혀낸다면
그때는 이러한 부분도 이해가 될지도 모른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는 사람을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다.
정리하자면 그 긴 서론이 이 한마디로 정리되는 것 같다.
그런 내가 한번 갈라선 인연은 다시 붙이면 안된다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다
처음에 말했듯이
1. 상대방에게 내가 소중했다면 애초에 멀어지지 않았을 것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나에게 비슷하게 행동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봤다.
그래도 붙잡으려 했을 것 같고
정말 소중했다면 그렇게 멀어지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잡지 않은 것 또한
나도 그들에게 서운한게 많았고
그들이 나에게 그렇게 소중한 존재이지 못했거나
혹은 그렇게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릴적 인연이 거의 남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나도 남들처럼 가끔 생각나면 연락할 사람도 있고
언제 갑자기 얘기하게 되더라도 편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주기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없다.
한번 친해지면 한 두 사람에게 매진하는 경향이 강해서 그런 것 같다.
뭐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니까 이건 그리 이상한 건 아닌 것 같다.
연락이 한동안 끊겼어도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걸까?
아니면 굳이 더 이상 연락하고 싶지 않은 걸까?
이러한 의문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애초에 연락은 필요할때, 볼 일이 있을때 하는거니까
요즘같이 바쁜 현대사회에서
싸워서 멀어진 사람이 아니면
굳이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싸운게 아닌 이상 언제 갑자기 연락해도
가식적으로라도 반갑게 맞이해줄테니까…
그러네.. 나도 싫은 사람한테 연락와도
편하게 잘 이야기 해줬던 것 같다
애초에 그 사람들이 나를 본인들이 필요할때만 찾아대서
그래서 싫어진거긴 하지만..
싸웠어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일테니
다시 친해져봤자 연애상대도 아닌데도
같은 이유로 멀어질 것은 뻔하다.
2. 멀어진 원인
이미 말했듯이 멀어지게 된 데에는 이유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너무 재미가 없어서 말하기 싫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너무 자기 얘기만 해서 싫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너무 자기 중심적이거나,
또 누군가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아서,
말을 함부러해서, 말버릇이 나빠서,
평소 행실이 나빠서… 이유는 다양할 것이고
문제를 고치겠다고 한 뒤에 만나도
문제를 고친 뒤에 만난게 아니니
갈등은 불가피하다.
중요한건 본인이 진짜 문제라고 느끼고
적극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하느냐,
실제 개선이 되느냐겠지만
보통의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멀어지고 다시 만나는 사람들은
막연하게 고쳐질 것이라는 기대만을 가지고 만난다.
그리고는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매우 많다.
3. 가벼운 인간관계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외향적인 사람 중 한번이라도 말 섞어본 사람은
다 친구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만화 주인공 같은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긴 하다는 것은 꽤나 충격적이지만….
아무튼 인간관계를 끈질기게 이어가는 사람들도 실제로 많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도 때로는 누군가와 멀어지기도 하지만
웬만해서는 그들은 타인을 함부러 대하지 않고
타인의 문제를 함부러 판단하지 않고,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다해도
더 많은 대다수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한번 끊긴 인연은 웬만해서 다시 이어지기도 힘들고
그러한 일로 스트레스 받는 기간도 조금은 긴 편인거 같다.
이 특징들을 통합적으로 보면 조금은 단순해진다.
나와 멀어진 인연은 내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은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하는 가벼운 사람이라는 것
그 사람 자체가 그런 사람은 아닐 수 있지만
그 사람에게 나는 그런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에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게 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이상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타인을 지나치게 욕할 필요는 없다.
모든 싸움에는 1:99든 99:1이든 50:50이든
서로의 잘못이 무조건 존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99배는 더 잘못 했어도
나도 그 1가지 문제로 다른 사람들과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은
중간에 얘기했듯
우리는 주관적인 인간이고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에서
사회적 규범을 따르며 살아가는 존재지만
그 좁은 국가 내의 하나의 사회적 규범이 있음에도
집단이나, 문화, 주변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내가 속한 특정한 집단이나, 단체의 가치관은 다를 수 있다.
즉 인간의 가치관과 도덕성은 비슷한듯 하면서도
각자가 설정해 놓은 경계는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주관적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다시 말해서 싸움의 지분이 타인에게 99가 있다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입장에서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고
상대방이 중요시하는 가치관에 따라서
상대방에게는 나의 잘못이 99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이런 추상적이고 말 같지도 않은 얘기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내가 얘기하는 것은 정답이 아닌
가능성과 경향성이다.
즉 정답이 없는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마주할 수 있는 최저치와 최대치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실제로 나보고 극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애초에 이 문제는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극단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어서 얘기하자면
결국 모든 것은 개개인의 주관에 의해서 판단되니
타인의 가치관이나 주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서로의 의견차이를 좁힐 수 없을 것이다.
가치관은 사람마다 정리된 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본인도 본인의 모든 가치관을 A~Z까지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종 딜레마에 대한 내용에 대한 견해까지 설명하기엔
우리는 딜레마 상황을 겪기 전까지는 결정을 내리지도 못하며
대표적인 트롤리 딜레마 조차 누군가는 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답을 내놓지 못할 수 있다.
즉 상대방도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인 스스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처음 겪는 문제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아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해결능력은 학습, 경험을 통해 발전되며
인간 사이의 갈등 또한 그렇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애초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해 못할 것이고
정확히 내가 상대방의 어떤 포인트가 마음에 안드는지 설명할 수 없거나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탐구하기 보다는
먼저 상대방에게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즉 문제 해결을 원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불만토로를 들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할 수도 있으며
상대방의 기분만 나쁘게 할 수 있다.
혹은 나의 화풀이만 하게 된 셈일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정말 다양하지만
내가 감정을 추스르고 보다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서로 맞추어나가는 방식을 택한다면
대부분의 갈등은 생기지 않을 것이며,
그 이외에 비합리적인 바램등으로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는 문제라던가,
상대방의 개인적인 문제 등으로 인한 갈등에는
또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이쯤되면 그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멀어진 인연은
애초에 나와 가치관도 다르고
맞춰가기도 남들에 비해 훨씬 어렵고
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더 노력하기 싫어서 멀어졌을 수도 있고,
상대방의 고집 때문일 수도 있다.
자기 문제면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면 되고
정말 소중하다면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면 된다.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정말 미안하다면 용서받지 못하더라도
사과를 해야 하는 것처럼
정말 소중하다면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노력해야한다.
인연이란 때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나는 다시 이어갈 가치가 있는 인연과는
아직 멀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살아가면서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인연들…
있다면 정말 소중히 대해주는 것이 좋다.
우린 소중한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시간이 있을거라고 착각하는 인간이니까
그런 점에 있어서
나는 잘난건 하나도 없지만
운은 참 기가막히게 좋은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서
정작 내 자신은 주변 사람에게 못하고 있다면
모순적일텐데
최근엔 곧 크리스마스라고 연락 끊겼던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안부인사도 건넸고 선물 보내주려고 주소도 받아놨다
부모님께도 올해 초에는 그리 못했지만
저번 달 들어서부터는 나름 효도도 조금은 한 것 같다.
이 글을 쓸걸 예상한건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하필 딱 이 글을 쓰기 전에
나는 주변사람들을 잘 챙긴 상황이었다니
어쩌면 반대로 주변 사람을 챙기고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참 운도 좋지
쉬운 글도 어렵게 쓰는 재주를 가진 나에게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방대한데
그걸 굳이 읽기 쉽게 줄이는 것이 싫어
무작정 생각나는대로 적어내려갔는데도
나중에 보니 내가 했던 말이
정확히 나중에 설명하려는 내용에 대해
인용하여 부연 설명으로 활용하기 좋은 내용들로 써져서
전체적인 완성도에 있어서는 의미가 생겼으니…
그래도 하루 빨리 머리 속의 내용들을
잘 정리해서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나 말고는 읽을 수 없을
정신없는 글을 작성하기 않기 위해서..
잘 정돈해서 쓰다보면
언젠가.. 기회를 잡아서 논문이라도 내겠지..
마치는 말로
인연은 사람 사이에만 있지는 않다
우연히 방문한 장소가 인생 맛집이 될 수도 있듯이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
이미 내 인생은 후회가 없지만
아니지 앞으로도 후회하기 싫으니까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